소리는 바로 사라집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는 사건이나 지식 등을 사람의 기억만으로 후대에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문자가 만들어졌습니다. 한자처럼 뜻을 드로내는 표의 문자나 히라가나나 영어의 알파벳처럼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표음 문자가 존재하지만, 우리 한글은 음소문자이면서도 음절문자로 기능할 수 있어 어떤 문자 체계보다 과학적이고 창의적입니다. 자음과 모음의 각각의 음소를 하나의 음절로 적을 수 있는 것은 종성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파악하여 그것을 표기하는 문자 운용법을 만드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훈민정음의 문자 운용법 중에서 음소를 음절문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든 종성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현대 국어의 발음과 표기의 관계
종성법을 이해하려면 우선 발음과 표기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1) 표기의 원칙 - 한글 맞춤법 제 1항, 총칙
표기할 때의 원칙인 한글 맞춤법은 위의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음성으로 된 표준어를 표음 문자인 한글로 올바르게 적는 방법입니다.
① 소리대로 표준어 적기
먼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다’는 말은 말 그대로입니다.
- [나무] ⇒ 나무
- [달리다] ⇒ 달리다
② 어법에 맞도록 적기
소리대로 적는다는 원칙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꼬치], [꼬츨], [꼬체], [꼰만], [꼰나무], [꼰노리], [꼳꽈], [꼳따발], [꼳빧]
위의 발음을 소리나는 대로만 적는다면, 음운의 환경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서 ‘꽃[花]’이라는 하나의 말이 여러 형태로 적히게 되어 '꽃'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지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발음 속에 들어 있는 의미가 같은 말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나의 형태로 고정하여, 다음과 같이 ‘꽃’을 일관되게 적는 것입니다. 즉 형태소의 본 모양을 밝혀 적는다는 말입니다.
꽃이, 꽃을, 꽃에, 꽃만, 꽃나무, 꽃놀이, 꽃과, 꽃다발, 꽃밭
2) 현대 국어의 7종성법과 표기
① 7종성법 - 7종성으로 발음
위 이미지는 한글 맞춤법의 표준어 규정 안에 있는 ‘표준 발음법’의 제 8항입니다.
음절의 받침(종성)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7개 자음으로 발음된다는 것입니다.
❶ 음절 끝소리 규칙
‘ㄴ, ㄹ, ㅁ, ㅇ’은 음절의 끝소리(받침)에서 소리와 표기가 같아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ㄱ, ㅋ, ㄲ ⇒ [ㄱ]
- ㄷ, ㅅ, ㅈ, ㅊ, ㅌ, ㅆ, ㅎ ⇒ [ㄷ]
- ㅂ, ㅍ ⇒ [ㅂ]
❷ 자음군 단순화
음절의 받침(종성)에 두 개의 자음(겹받침)이 올 때, 하나의 자음만 남고 나머지 자음은 탈락하는 현상입니다.
- ㄳ, ㄺ ⇒ [ㄱ]
- ㄵ, ㄶ ⇒ [ㄴ]
- ㄺ, ㄽ, ㄾ, ㅀ ⇒ [ㄹ]
- ㄻ ⇒ [ㅁ]
- ㄼ, ㄿ, ㅄ ⇒ [ㅂ]
② 어법에 맞도록 종성 표기
❶ 예시
대표 발음 | 발음 예시 | 표기 예시 | |
음절 끝소리 규칙 | 자음군 단순화 | ||
[ㄱ] | [닥따], [키윽] | [목], [닥] | 닦다, 키읔, 몫, 닭 |
[ㄴ] | [안따], [안네] | 앉다, 않네 | |
[ㄷ] | [욷ː따], [젇], [쫃따], [꼳], [솓], [읻따] | 웃다, 젖, 쫓다, 꽃, 솥, 있다 | |
[ㄹ] | [물꼬], [외골], [훌따], [알타] | 묽고, 외굀, 훑다, 앓다 | |
[ㅁ] | [담따] | 닮다 | |
[ㅂ] | [압], [덥따] | ㅂ-[밥:따], [읍꼬], [업꼬] | 앞, 덮다, 밟다, 읊고, 없고 |
❷ 종성의 발음과 표기 정리
받침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받침(종성)의 종류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ㄱ ]⇒ ㄱ, ㅋ, ㄲ, ㄳ, ㄺ
- [ㄴ] ⇒ ㄴ, ㄵ, ㄶ
- [ㄷ ]⇒ ㄷ, ㅅ, ㅈ, ㅊ, ㅌ, ㅆ, ㅎ
- [ㄹ] ⇒ ㄹ, ㄺ, ㄽ, ㄾ, ㅀ
- [ㅁ] ⇒ ㅁ, ㄻ
- [ㅂ] ⇒ ㅂ, ㅍ, ㄼ, ㄿ, ㅄ
- [ㅇ] ⇒ ㅇ
※ 현대 국어의 표기에 사용하는 받침(종성) 27자를 사전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 ㄲ ㄳ ㄴ ㄵ ㄶ ㄷ ㄹ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ㅁ ㅂ ㅄ ㅅ ㅆ ㅇ ㅈ ㅊ ㅋ ㅌ ㅍ ㅎ
2.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종성법
1) 표기의 원칙
훈민정음의 창제 당시 표기 원칙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입니다.
예시) <용비어천가>의 제 2장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나서 문자를 실험하기 위해 지은 노래가 <용비어천가>입니다. 아래에서 보듯이 원래의 형태를 밝혀 적기보다는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있습니다.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
ᄉᆡ〯미〮 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 그츨〮ᄊᆡ〮 내히 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깊 + 은 → 기픈, ᄇᆞᄅᆞᆷ + 애 → ᄇᆞᄅᆞ매, 둏 + 고 → 됴코, 샘 + 이 → ᄉᆞㅣ미, ᄀᆞᄆᆞᆯ + 애 → ᄀᆞ ᄆᆞ래, 바ᄅᆞᆯ + 애 → 바ᄅᆞ래
2) 종성부용초성
① 개념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라는 뜻으로 형태소 밝혀 적기의 한 형태입니다.
훈민정음의 예의 부분에서 간략히 언급된 원칙으로서, 초성17자(ㄱㅋㆁ, ㄷㅌㄴ, ㅂㅍㅁ, ㅅㅈㅊ, ㆆㅎㅇ, ㄹ, ㅿ)를 모두 받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음절이 초성 · 중성 · 종성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음과 종성이 초성과 같아서 달리 종성 발음에 해당하는 글자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만들어진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언어학의 천재인 세종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 적용이 되어 있습니다. 일부 종성의 형태소를 밝혀 적은 것으로서, 오늘날 한글 맞춤법 규정을 만드는 데 힌트가 된 규정입니다.
② 예시
‘곶’이나 ‘ᄀᆞᇫ’ 등의 뒤에 형식 형태소 모음이 오지 않고 음절이 독립되어 있을 때, 원래의 형태소를 종성에서 사용하고 있는 예시입니다.
용비어천가 – 2장 곶(꽃) 됴〯코, 125장 ᄀᆞᇫ(끝) 업스시니
월인천강지곡 - 다ᄉᆞᆺ 곶(꽃)
※ 그러나 뒤에 형식 형태소 모음이 오면 종성이 초성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蓮花人 고지 나거늘 : 곶 + 이 → 고지
3) 8종성법
① 개념
8개의 자음으로 종성 발음을 표기하는 규정으로 소리나는 대로 적기의 한 형태이며, '8종성가족용법'이라고도 합니다.
<훈민정음> '해례' 부분에서, 예시와 함께 제시되어 있는 규정으로 15 ~ 16세기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중종 때 최세진은 <훈몽자회>에서 '8종성법'을 ‘초ㆍ종성통용 8자'라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해당 음운이 종성에서 발음되는 8가지 유형의 표기입니다.
- ㄱ, ㅋ → [ㄱ]
- ㆁ → [ㆁ]
- ㄷ, ㅌ, ㆆ, ㅎ → [ㄷ]
- ㄴ → [ㄴ]
- ㅂ, ㅍ → [ㅂ]
- ㅁ → [ㅁ]
- ㅈ, ㅊ, ㅅ, ㅿ → [ㅅ]
- ㄹ → [ㄹ]
위 이미지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종성에서 'ㄷ'과 'ㅅ' 발음을 구별하고, 그것을 표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 8종성법의 예시와 현대 국어와 비교
중세 국어는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8종성법은 실제 발음이며 동시에 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 국어의 7종성법은 발음하는 규정이지 표기하는 규정이 아닙니다.
하여튼, 현대 국어의 7종성법과 비교했을 때, 중세 국어에서는 종성의 ’ㄷ‘과 ’ㅅ‘ 발음을 구별하였기에 달리 표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밭 → 받, 높고 → 놉고, 놓노니 → 녿노니
- 곶 → 곳, ᄉᆞᄆᆞᆾ디 → ᄉᆞᄆᆞᆺ디
4) 7종성법
① 7종성법(근대 국어)
소리나는 대로 적는 8종성법 중, ‘ㅅ, ㄷ’ → ‘ㅅ’으로 통일하여 표기하는 방법입니다.
8종성법의 종성 ‘ㅅ’과 ‘ㄷ’ 발음의 구별이, 근대 국어에 와서 사라지면서 점차 하나로 통일되어 7종성법이 생기게 됩니다. 이때 종성의 실제 발음이 현대 국어의 '음절 끝소리 규칙'과 같은 ‘ㄷ’임에도 불구하고 표기는 ‘ㅅ’으로 통일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표기의 규정이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의 혼란한 사회상을 반영한 표기상의 혼란입니다.
이 표기법은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기 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예시)
벋 → 벗, 붇 → 붓, 믿고 → 밋고, 받고 → 밧고
② 현대국어의 7종성법과 비교
근대 국어와 현대 국어의 7종성법의 차잇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근대 국어 - 종성 ‘ㅅ, ㄷ’의 발음을 ‘ㅅ’으로 잘못 인식하고 ‘ㅅ’으로 표기한 오류입니다.
- 현대 국어 - 종성 ‘ㅅ, ㄷ’의 발음이 ‘ㄷ’ 발음으로 통일된다고 바르게 인식한 '표준 발음법'이지, 이것이 '종성 표기법'은 아닙니다.
15세기 중세국어에서는 종성에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의 8개 자음을 사용하여 표기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를 8종성법이라고 합니다. 17세기부터 8종성 가운데 'ㄷ'과 'ㅅ'의 받침이 구별되지 않아서 'ㅅ'으로 잘못 통일함으로써, 근대 국어의 종성 표기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의 7개 자음만 받침으로 사용하는 7종성법이 통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표기법은 17세기부터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될 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상으로 발음과 표기의 관계를 기준으로 현대 국어의 종성법과 훈민정음의 종성법에 대하여 역사적인 흐름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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