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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문자 운용법 – 연서법과 순경음 비읍(ㅸ)

보리마음 2024. 11. 15. 19:46

세종대왕께서 과학적 원리로 문자를 새롭게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또 다른 훈민정음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만든 문자를 확장하고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세밀하고 창의적으로 문자의 운용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니 세종대왕은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된 문자 운용법

  • 나란히 쓰기(竝書法 병서법), 이어쓰기(連書法 연서법), 종성법(終聲法), 붙여 쓰기(附書法 부서법), 성음법(成音法), 사성법(四聲法)

새롭게 만든 28자의 문자를 조합하여 문자를 확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자음과 모음의 발음 순서를 표현하기 좋은, 가로로 나란히 어울러서 쓰는 병서법(竝書法)입니다. 그러면 세로로 이어서 쓰는 ‘연서법(連書法)은 무엇인가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문자 운용법’ 중에서 세로로 이어서 쓰는 ‘연서법(連書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훈민정음 예의 언해본 중 연서법

1. 연서법의 필요성

15세기 당시 선진국이던 중국의 문물이 한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오늘날 원어민 영어가 중요하듯이, 혼란스러운 한자음을 바로잡아 중국식 발음에 가깝게 표준음을 훈민정음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동국정운식 표기 방식은 실용성이 떨어져 잘 사용되지 않다가, 16세기 들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여튼, 우리말에는 제한적으로 쓰이지만 중국말에는 흔한 순경음을 동국정운식으로 적기 위해 '연서법'으로 만든 문자가 바로 순경음(脣輕音)입니다.
 

2. 순경음(脣輕音)의 특징

순경음에 대해서 알려면 순음을 알아야 합니다.
 

1) 순음(脣音) - 입술소리

ㅂ, ㅍ, ㅃ, ㅁ
 
발음하기 시작할 시점(발음 직전 상태)에 두 입술이 닫힌 상태에서, 발음을 시작하면서 입술을 벌리게 되므로, 두 입술에 초점을 맞추어 순음(입술소리)라고 합니다.

  • ㅂ – 전청(예사소리)이며, 파열음이며, 무성음입니다.
  • ㅍ – 차청(거센소리)이며, 파열음이며, 무성음입니다.
  • ㅃ – 전탁(된소리)이며, 파열음이며, 무성음입니다.
  • ㅁ – 불청불탁(울림소리)이며, 비음(콧소리)인 유성음입니다.

 

훈민정음 예의 언해본의 연서법과 순경음

2) 순경음(脣輕音) - 입술 가벼운 소리

ㅸ, ㆄ, ㅹ, ㅱ

순음(脣音)에 ’가볍다‘는 의미의 ’경(輕)‘이 추가되었네요. 우리말로 하면 ’입술 가벼운 소리‘라는 뜻입니다. 문자를 조합하는 방법은 입술 소리 아래에  후음인  ’ㅇ‘을  이어서 적는 방식입니다.
 
그럼 하필 왜 목구멍 소리인 후음 ’ㅇ‘ 일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의 연서법과 순경음

위의 이미지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ㅇ을 순음(입술소리) 글자 아래에 이어 쓰면 순경음(가벼운입술소리)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ㅇ을 이어 쓴 것은 순경음(가벼운입술소리)이 입술을 살짝 다물어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목구멍에서 나오는 숨이 가볍게 다문 입술을 마찰하여 나는 소리(양순 마찰음)가 바로 '순경음(脣輕音)입니다. 그래서 목구멍 소리(ㅇ)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ㅂ’ 아래에 ‘ㅇ’을 이어서 씁니다.  'ㅂㅇ'으로 '합용병서'를 하지 않은 까닭은 시간적 순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3) 정리

구분전청차청전탁불청불탁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울림소리
입술 무거운 소리(순음)
입술 가벼운 소리(순경음)

 
 3. 순경음의 발음과 사용

1) ‘ㅸ ’  순경음 비읍의 발음과 사용

① 발음

  • 안울림소리(무성음) – 원래 ‘ㅸ’의 발음은 무성음인 전청  ‘ㅂ’의 가벼운 소리이므로  안울림소리(무성음)입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과 사잇소리의 발음입니다.
  • 울림소리(유성음) – 순경음 비읍 (ㅸ) 은 울림소리인 모음 사이, 혹은 울림소리인 ‘ㄹ’이나 ‘ㅿ’과 모음 사이에서 음운이 변동되어 울림소리(유성음)가 됩니다.

 

홍무정운 역훈의 한자음 표기 / 훈민정음 예의 언해본의 사잇소리

② 한자음 표기에 사용

우선 동국정운식 한자음에 사용하는 ‘ㅸ’은 중국식 발음에 가까운 한자음과 사잇소리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로 사용되었습니다.
 

  • 한자음 ㅸ   -  어두의 초성에 발음되므로 위 이미지의 '非( ㅸㅣ) ' 처럼 양순 마찰음의 안울림소리(무성음)로 발음합니다.
  • 사잇소리  -  앞 음절의 끝소리가 울림소리(ㅱ)일 때, 같은 순경음 계열의 전청자(ㅸ)가 사잇소리가 되며, 이는 뒷음절의 초성을 된소리로 만듭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용자레 중의 순경음 비읍

③ 우리말 표기에 사용

순경음 중에서 ‘ㅸ’만이 15세기에 우리말을 표기하는데 두루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ㅂ’이 울림소리 사이에서 음운 변동(울림소리 되기- 유성음화)이 된 상태를 소리나는 대로 적었으므로 ‘ㅸ(순경음 비읍)’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음가는 유성 양순 마찰음인 [β]입니다.
다음은 예시입니다.

  • 15세기 문헌   -   위의 이미지에 나오는 단어의 ‘ㅸ’이 예시입니다
  • 오늘날 경상도 방언 발음   -   '고 ㅸㅏ서' (고와서),    '더 ㅸㅓ' (더워)

 

※ ‘ㅸ(순경음 비읍)’의 음운 변화(15세기까지  'ㅸ'이  사용됨)

  • ㅸ → 오/ 우 ⇒ 도 ㅸㅏ > 도와, 자블다 > 자불다 (자블다의 ㅂ은 ㅸ입니다. - 입력 불가)
  • ㅸ → ㅇ ⇒ 수 ㅸㅣ > 수이 > 쉬

 

홍무정운 역훈 중에서

2) ‘ㆄ, ㅹ, ㅱ’ 의발음과 사용

우리말 표기에는 사용하지 않은 문자이며, 오직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훈민정음으로 적기 위하여 만든 순경음 문자입니다.
15세기 당시 혼란스러운 한자음을 바로잡아 중국식 발음에 가까운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가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국가적인 장려에도 불구하고 실용성이 떨어져 잘 사용되지 않다가, 16세기 들어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 ㆄ - 동국정운식 한자음에만 사용되었으며 안울림소리(무성음)입니다. 위의 이미지에서 敷(부)를 참고하세요.
  • ㅹ - 동국정운식 한자음에만 사용되었으며, 우리식 발음은 안울림소리(무성음)이지만, ‘奉(봉)’ 글자의 초성인 ‘ㅹ’의 중국식 발음은 울림소리(유성음)입니다.
  • ㅱ - 동국정운식 한자음에만 사용되었으며, 울림소리(유성음)입니다. 위의 이미지에서 微(미)를 참고하세요.

 
이상으로 자음을 조합하여 위 아래로 이어쓰기하는 '연서법'이 만들어진 이유와 그 방법과 함께, 순경음이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뿐만이 아니라. ‘ㅸ 순경음 비읍’의 경우는 15세기에 우리말 표기에도 많이 사용하였음을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