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하여 중국 음운학 이론서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초성과 종성이 같은 자음을 쓸 수 있다는 점을 깊게 인식하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세분하고, 중성을 중심에 두고 앞 뒤에 초성과 종성을 배치하여 하나의 음절을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음소 문자이면서도 음절 문자인 새로운 경지이며, 과학적일 뿐만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의도적인 문자의 혁명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훈민정음에서, 음절의 중심이 되는 '모음의 창제 원리'와 '모음에 적용된 음양 사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훈민정음의 자음 창제 원리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훈민정음의 자음 창제 원리와 음양오행
※ 창제한 모음 11자를 조합하여 '합용병서로 확장한 다른 모음'은 아래의 링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세요.
훈민정음 문자 운용법 - 나란히 쓰기(병서법)
1. 모음 창제의 기반인 '음양 사상'
'음양(陰陽) 사상'은 동양 철학의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자연과 우주의 모든 현상은 음(陰)과 양(陽)의 상반되는 두 성질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적인 조화로 그 변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상입니다. 다음은 음(陰)과 양 (陽)의 일반적인 성질입니다.
- 음(陰 그늘) – 아래, 안, 내향적이다, 무겁다, 느리다, 어둡다. 차다, 수동적이다
- 양(陽 볕) – 위, 밖, 외향적이다, 가볍다. 빠르다, 밝다, 따뜻하다, 활동적이다
2. 모음 창제 원리(총 11자)
1)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형한 모음의 기본자(3자)
만물의 근본을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음양의 조화로 만든 세상 만물 가운데 중요한 '사람(人)'이 바로 삼재(三才)입니다. 그래서 이 삼재의 모양을 간략히 본떠서 모음의 기본자를 만들었습니다.
- ㆍ ⇒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둥근 모양’인 ‘ㆍ’로 상형하였습니다. 하늘은 위에 있고 가벼우니 양(陽)입니다.
- ㅡ ⇒ 땅은 평평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평평한 모양’인 ‘ㅡ’로 상형하였습니다. 땅은 아래에 있고 무거우니 음(陰)입니다.
- ㅣ ⇒ 사람은 음과 양의 기운을 모두 받은 존재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인 ‘ㅣ’로 상형하였습니다. 사람은 음양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중(中)입니다.
2) 기본자를 조합한 초출자(4자)
‘ㆍ(하늘 ) ’ 은 삼재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므로 ‘ㅡ’와 ‘ㅣ’에 작용하며, ‘ㆍ’ 한 개를 조합하여 처음 생겨난 뜻으로 만든 모음이므로 초출자(初出字)라고 합니다.
- 양 – ㅗ, ㅏ 예시) 졸졸, 몰랑몰랑, 오똑하다
- 음 – ㅜ, ㅓ 예시) 줄줄, 물렁물렁, 우뚝하다
‘ㆍ’ 가 ‘ㅡ ’ 의 위나 ‘ㅣ’ 의 바깥쪽(오른쪽)에 놓인 것은 그 발음이 가볍고 경쾌한 양(陽)의 성질 때문이며, ‘ㅡ’ 의 아래나 ‘ㅣ’ 의 안쪽(왼쪽)에 놓인 것은 그 발음이 무겁고 둔탁한 음(陰)의 성질 때문입니다. 그리고 'ㅡ (땅)'이 'ㅣ(사람)'보다 우선하므로 ‘ㅗ, ㅜ’ 가 ‘ㅏ, ㅓ’ 의 앞에 위치합니다.
3) 기본자를 다시 조합한 재출자(4자)
삼재의 으뜸은 ‘ㆍ(하늘 ) ’ 이므로, ‘ㅡ’와 ‘ㅣ’에 작용하여 다시 생겨난 뜻으로 ‘ㆍ’ 두 개로 조합하여 만든 모음이므로 재출자(再出字)라고 합니다. ‘ㆍ’의 위치로 음양 사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역시 ‘ㅛ, ㅠ’가 ‘ㅑ, ㅕ’의 앞에 위치합니다.
- 양 – ㅛ, ㅑ
- 음 – ㅠ, ㅕ
※ ‘ㆍ’가 초출자와 재출자 8자에 모두 들어 있는데 이는 마치 양이 음과 사람을 통솔하여 두루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3. 발음의 성질
위 이미지는 모음을 발음할 때, 혀끝의 위치를 궤적으로 그린 ‘모음 삼각도’입니다.
1) 15세기 단모음(7자)
① 15세기 단모음 체계
훈민정음의 기록으로 보아 단모음은 총 7자입니다. 즉 모음의 기본자와 초출자입니다.
전설모음 | 중설모음 | 후설모음 | ||||
평순 모음 | 원순 모음 | 평순 모음 | 원순 모음 | 평순 모음 | 원순 모음 | |
고모음 | ㅣ | ㅡ | ㅜ | |||
중모음 | ㅓ | ㅗ | ||||
저모음 | ㅏ | ㆍ(?) |
※ ‘ㆍ’ ⇒ 후설 원순 중저모음으로 짐작함.(훈민정음 기록과 제주도 방언 참고, 이 글의 아래에 ‘ㆍ’ 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② 훈민정음 해례에 기록된 단모음의 성질
- ㆍ - 소리를 낼 때는 혀가 움츠러들어 그 소리가 깊음.
- ㅡ - 소리를 낼 때는 혀가 조금 움츠러들어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음.
- ㅣ - 소리를 낼 때는 혀가 움츠러들지 않아 소리가 얕음.
- ㅗ - 소리는 ㆍ와 동일하나 소리를 낼 때 입이 오므려짐(원순 모음).
- ㅏ - 소리는 ㆍ와 동일하나 소리를 낼 때 입이 벌어짐(평순 모음).
- ㅜ - 소리는 ㅡ와 동일하나 소리를 낼 때 입이 오므려짐(원순 모음).
- ㅓ - 소리는 ㅡ와 동일하나 소리를 낼 때 입이 벌어짐(평순 모음).
※ 오늘날 단모음 체계(10자)
전설모음 | 후설모음 | |||
평순 모음 | 원순 모음 | 평순 모음 | 원순 모음 | |
고모음 | ㅣ | ㅟ | ㅡ | ㅜ |
중모음 | ㅔ | ㅚ | ㅓ | ㅗ |
저모음 | ㅐ | ㅏ |
※ 15세기에는 ㅔ, ㅐ, ㅟ, ㅚ는 '이중모음'입니다.
2) 재출자의 성질
① 반모음 ‘ㅣ’의 개념
재출자에는 음운학적으로 ‘반모음 ㅣ’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반모음 ㅣ’는 발음기호로 〔j〕이며, ‘모음ㅣ’보다 ‘반모음 ㅣ’가 상대적으로 발음 기관의 장애를 더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반모음'이라 하며, 다른 자음과 비교했을 때는 발음기관의 장애를 덜 받기 때문에 ‘반자음’이라고도 합니다.(반모음 = 반자음)
예시) 반모음ㅣ + 모음 ㅗ = 요
② 훈민정음 해례에 기록된 재출자의 성질
- ㅛ - 소리는 ㅗ와 동일하나 ㅣ의 소리(반모음 ‘ㅣ’)에서 시작된다.
- ㅑ - 소리는 ㅏ와 동일하나 ㅣ의 소리에서 시작된다.
- ㅠ - 소리는 ㅜ와 동일하나 ㅣ의 소리에서 시작된다.
- ㅕ - 소리는 ㅓ와 동일하나 ㅣ의 소리에서 시작된다.
3) ‘ㆍ(아래 아)’의 발음의 성질과 소멸
① 훈민정음 해례에 기록된 ‘ㆍ’의 성질
- ㆍ 는 혀가 오그라들고 소리가 깊다.
- ㅗ 는 ㆍ와 동일하나 소리를 낼 때 입이 오므려진다.
- ㅏ 는 ㆍ와 동일하나 소리를 낼 때 입이 벌어진다
위의 기록을 참고할 때, '혀가 오그라들고’라는 것은 혀의 앞뒤 위치가 ‘후설모음’이며,
모음 ‘ㅗ, ㅏ’가 'ㆍ 와 동일하나 ' 라는 것은 ‘ㅗ’와 ‘ㅏ’의 중간소리〔∧〕라고 할 수 있으니, 혀의 높낮이가 ‘중저모음’이라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② 제주도 방언에서 ‘ㆍ’의 발음
제주도의 노인들은 ‘ㆍ’ 발음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발음이 'ㅗ'와 유사하다는 것은 원순 모음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아이구, 팔이야! → 아이구, ᄑᆞᆯ(폴)이야!
- 어서 오세요의 방언 → ᄒᆞᆫ저옵서예(혼저옵서예)
③ ‘ㆍ’의 변화와 소멸
음운의 소멸 과정은 다음과 같이 두 단계이며, 이러한 변화로 양성 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 모음은 음성 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 조화의 원칙이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 15세기 후반~16세기 초 - 두 번째 이하 음절에서 'ㆍ'는 주로 'ㅡ'로 변함.
- 18세기 중엽이후 - 첫 음절의 'ㆍ'는 주로 'ㅏ'로 변함.
예시) ᄀᆞᄅᆞ치다 > ᄀᆞ르치다 > 가르치다, 나ᄂᆞᆫ > 나는
위의 예시에서 보듯이, 16세기에 'ㆍ' 가 두 번째 음절에서 ‘ㅡ’ 로 변하면서 모음조화가 파괴되기 시작하여 표기상에 혼란이 왔습니다.
※ 20세기 초반까지 ‘ㆍ’는 소리의 음가는 사라졌지만, 문자 기록의 관습 상으로 ‘ㆍ’가 지속적으로 쓰였습니다.
이상으로 훈민정음의 해례에 기록된 모음의 창제의 창제 원리와 그 성질을 동양의 전통 사상인 음양 사상을 바탕으로 자세하게 알아 보았습니다.
※ 훈민정음의 자음 창제 원리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훈민정음의 자음 창제 원리와 음양오행
※ 창제한 모음 11자를 조합하여 '합용병서로 확장한 다른 모음'은 아래의 링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세요.
훈민정음 문자 운용법 - 나란히 쓰기(병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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