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사랑

훈민정음의 문자 운용법 – 사성법

보리마음 2024. 11. 18. 01:20
세계 문자 박물관에서 (챙김 블로그 인용)

세계의 많은 문자들이 오랜 역사를 거쳐서 문화적으로 누적된 언어적 결과물이라서 문자와 그 운용법 사이에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문자와 운용법은 과학적이고 창의적이며 의도적입니다. 특히 음소 문자이면서도, 동시에 음절 문자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말소리를 문자로 적거나 문자를 음성으로 읽을 때 아주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음절의 높낮이까지도 읽을 수 있는 운용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훈민정음의 문자 운용법 중에서 음절의 높낮이를 표현하는 '사성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음소문자이자 음절문자인 한글의 아름다운 모양

 

1. 음운과 음절의 개념

'사성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음운'과 '음절'의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음절

발음이 가능한 말소리의 최소의 단위입니다.
예시)  -  가, 나, 너, 간, 감

2) 음운

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말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자음, 모음, 고저, 강약, 장단 등이 있습니다.
 

① 분절 음운

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요소 중에서, 말에서 그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작은 요소입니다. 다른 말로 ‘음소(音素)’라고 합니다.

  • ‘가’와 ‘나’ - 초성의 자음으로 두 말의 뜻을 구별합니다.
  • ‘나’와 ‘너’ - 중성의 모음으로 두 말의 뜻을 구별합니다.
  • ‘간’과 ‘감’ - 종성의 자음으로 두 말의 뜻을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분절음운은 자음모음이네요.
 

② 비분절 음운

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음절에 포함되어 있어 그 경계를 나눌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다른 말로 ‘운소(韻素)’라고 합니다.

  • '말'[馬]과 '말ː'[言] - 말소리에 포함된 ‘장단’으로 두 말의 뜻을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장단’이 비분절 음운에 해당합니다. 중국어에는 '고저'가, 영어에는 '강약'입니다.
 

훈민정음 예의의 사성법

2. 훈민정음의 사성법(四聲法) 표기

그렇다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우리말은 음절에 어떤 비분절 음운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1) 기록

① <훈민정음> 예의

위의 이미지는 ‘<훈민정음> 예의’에 기록된 규정으로, 훈민정음으로 언해한 부분에는 음절의 왼쪽에 점을 찍혀 있네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음절 단위로 모아쓴 글자의) 왼쪽에 점 하나를 찍으면 거성이고, 점 두 개를 찍으면 상성이며, 점을 찍지 않으면 평성이다. 입성은 점을 찍는 방식은 마찬가지이나 그 소리가 촉급하다(
빠르고 급하다).
 

② ‘<훈민정음> 해례’ 의 합자해

‘<훈민정음> 해례’ 의 합자해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대강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글자마다 왼쪽에 점 하나를 찍으면 거성이 되고, 점 두 개를 찍으면 상성이 되고, 점을 찍지 않으면 평성이 된다. 그런데 한자음(중국말)의 입성은 거성과 서로 비슷하지만, 우리말의 입성은 일정하지 않아서 평성, 상성, 거성이 있으므로, 입성의 경우에 점을 더하는 것은 평성, 상성, 거성과 동일하다.
 

③ 기록에 대한 결론

음절마다 갖추어진 ' 고저(높낮이)' 를 다른 말로 ‘성조(聲調)'라고 하는데,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중세 국어는 ’비분절 음운‘ 중에서 '고저'이므로 ’성조 언어‘입니다. 성조에는 평성, 상성, 거성, 입성  4가지가 있는데, 입성은 다시 평성과 상성과 거성을 지닌 입성이 있으며 점 찍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 현대 국어의 표준어는 '성조 언어'가 아니라, ’장단‘으로 뜻을 구별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국어 사전에도 단어의 뜻을 구별하는 비분절 음운은 다음과 같이 '장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시)  눈 (眼) - 눈: (雪), 밤 (夜) – 밤: (栗)
 

2) 성조 종류와 표기

중세 국어의 성조의 4가지 종류가 있으며 음절의 왼쪽에 점을 찍어서 표기합니다. 사성(四聲)을 표기하는 점이라고 해서 ‘사성점’이라 하며, 후대 사람들은 ‘방점’이라는 용어도 사용했습니다.
 
※ 방점[傍點] - 원래는 글을 읽는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낱말의 옆이나 위에 찍는 점을 말합니다.
 

① 평성(平聲)

음절의 높이가 낮은 소리입니다. 편안하며 조화로워 봄과 같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왼쪽에 점을 찍지 않습니다. 예시) 활[弓]
 

②상성(上聲)

음절의 높이가 낮았다가 높아지는 소리입니다. 왕성하여 만물이 점점 번성하는 여름과 같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예시) :돌[石]
 

③거성(去聲)

음절의 높이가 높은 소리입니다. 거성은 풍성하고 장엄하여 만물이 성숙하는 가을과 같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예시)  ·갈(칼)
 

④ 입성(入聲)

종성의 발음이 ’ㄱ, ㄷ, ㅂ‘으로 끝나는 경우, 음절의 발음이 급하게 끊어 닫히므로 입성이라 합니다. 만물이 닫혀 저장되는 겨울과 같은 소리라고 했습니다. 입성은 다시 평성과 상성과 거성을 지닌 입성이 있으며, 점을 더하는 것은 평성과 상성과 거성과 동일합니다.
 

  • 평성 입성 - 긷(기둥) 녑(옆구리)
  • 상성 입성 - :낟(곡식) :깁(비단)
  • 거성 입성 - ·붇(붓) ·몯(못), ·입(입)

 

두시언해 초간본 / 두시언해 중간본

3) 성조와 사성점(방점)의 소멸

① 성조의 소멸

성조는 17세기 이후에 소멸하면서 현대 국어의 표준어에서 비분절 음운인 '장단'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낮았다가 높아지는 소리인 상성이 주로 장음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아 잘 알 수 있습니다.
 
※ 표준어에서는 성조가 소멸되었지만, 경상도와 함경도의 방언에는 성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② 사성점(방점)의 소멸

다음의 문헌에는 사성점이 사용되었습니다.

  • 세종 당시(15세기) -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
  • 세조 당시(15세기) - <훈민정음 언해본> 등
  • 성종 당시(15세기) - <두시언해 초간본>
  • 선조 당시(16세기 말) - <소학 언해(선조판)>

이후 인조 때 간행한 <두시언해 중간본>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15 ~16세기 말까지는 사성점을 사용한 기록이 보이지만 17세기 이후에는 사라졌습니다.
 
이상으로 훈민정음의 문자 운용법 중에서 사성법은 15세기 당시의 우리말이 성조를 지닌 말이었으며, 훈민정음에서 규정한 사성법이 16세기까지 사용되었음을 볼 때, 우리 조상님들이 말을 문자로 기록할 때 얼마나 세밀하게 적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