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사랑

사라진 훈민정음 문자 – 여린 히읗(ㆆ)의 발음과 사용

보리마음 2024. 11. 19. 22:04

세종께서 만든 문자들 중에 사라진 문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ㆍㆁ,ㆆ,ㅿ’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문자는 오늘날에 발음할 수 없는 문자일까요? 조선시대 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발음기관은 동일하므로, 이 문자들을 지금도 무의식 중에 발음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모음인 ‘ㆍ(아래아)’는 현재 제주도 방언에서 토착민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표기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렇게 사라진 우리 문자들이, 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대의 AI 디지털 문명에서 다시 조명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자와 발음이 1:1로 대응하는 유일한 문자이면서도, 문자들 간에 과학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 필요에 따라 새로운 문자로 조합해 발음기호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발음하지만 문자로는 사용하지 않는, 하지만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그 발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문자로 기록하여 남긴 ‘여린 히읗(ㆆ)’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홈런 이야기' 블로그에서 인용

1. 여린 히읗(ㆆ)의 발음

1) 전청(예사소리)에 해당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전청자(예사소리) ’ㄱ, ㄷ, ㅂ, ㅅ, ㅈ‘을 나란히 쓰면 전탁자(된소리)가 되는데, 이는 전청의 소리가 엉기면 전탁이 되기 때문이다. 오직 후음(목구멍소리) 글자의 경우에만 차청자 ’ㅎ‘을 이용하여 전탁자 ’ㆅ(쌍히읗)‘을 만드는 것은 대개 전청자(예사소리)인 ’ㆆ‘은 소리가 깊어서 엉기지 못하는 데 비해, 차청자(거센소리)인 ’ㅎ‘은 소리가 얕아서 엉기어 전탁(된소리)이 되기 때문이다.
 
※ 엉기다 - 유성음 또는 경음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위의 내용을 참고로 하면, ’ㆆ‘은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이며, 입을 벌린 상태에서 성문(성대의 문)만 살짝 죈 상태가 ’ㆆ‘의 발음 준비상태이며, 모음을 발음하기 시작하면서 죈 성문이 열리면서 파열하는 ’성문 파열음[ʔ]‘이며, 전청에 해당하는 예사소리입니다.
부딪쳤을 때 내는 ’아!‘ 소리의 첫 부분에서 ’ㆆ‘ 발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명칭으로 본 여린 히읗(ㆆ)의 발음

  • 여린 히읗 – 차청자(거센소리)인 ’ㅎ‘보다는 약하게 발음하는 전청자(예사소리)이므로 붙인 이름.
  • 된이응 – 모음에 포함되어 성문이 완전 개방된 ’ㅇ‘ 발음보다 성문을 살짝 죄었다가 파열시켜 발음하므로, 그 방식이 된소리 발음과 같기에 붙여진 명칭이지, 된소리는 아닙니다.

※ ㅇ – 울림소리, ㆆ - 예사소리, ㆅ - 된소리, ㅎ - 거센소리
 

'여린 히읗' 문자로 발음을 표기

3) 발음 비교 예시

① 초성과 종성에서 발음 비교

일(하다)와 일자(一子), 일등(一等) 비교
'일(하다)‘의 초성 ’ㅇ‘과 종성’ㄹ‘ 발음은 성문을 죄지 않고 자연스럽게 숨이 흐르며 발음되지만, '일자(一子)와 일등(一等)"의 ’일‘ 발음은, 초성 발음이 성문을 죄었다가 파열하며 발음하므로 ’ㆆ‘ 발음이며, 종성도 ’ㄹ‘ 발음 후에 빠르게 성문이 닫히므로 ’ㆆ‘ 발음이 개입되어 있으며, 그 영향으로 뒤에 오는 자음이 된소리로 발음됩니다. 일종에 이영보래(아래 참고)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위 이미지처럼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습니다.
 

②종성에서 발음 비교

(길이를 재는)줄자와 활자(活字)
'줄자'의 종성 ’ㄹ‘ 발음은 성문을 죄지 않고 자연스럽게 숨이 흐르며 발음되어 뒤에 오는 자음을 된소리로 만들지 않지만, 활자(活字)의 ’ㄹ‘은 발음 후에 빠르게 성문이 닫히므로 ’ㆆ‘ 발음이 개입되어 있으며, 그 영향으로 뒤에 오는 자음이 된소리로 발음됩니다. 일종에 이영보래(아래 참고)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위 이미지처럼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습니다.
 

2. 문헌에 기록된 여린 히읗(ㆆ)

흔히 여린 히읗(ㆆ)이 음가가 없는 부호의 기능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발음을 할 수 없는 문자일까요? 지금도 우리들은 무의식 중에 발음하면서도 그것이 ‘여린 히읗(ㆆ)’ 발음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세심하게 발음을 표기했던 15세기 당시의 기록으로 'ㆆ'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1) <동국정운>

당시에는 한자의 발음이 오늘날처럼 표준화된 발음이 아니라, 다양한 발음이 있어서, 한자음을 표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자가 원래 중국 글자인 만큼, 중국식 발음에 가깝게 우리 한자음을 정리한 것이 바로 <동국정운(東國正韻)>입니다. 다음은 <동국정운>에 있는 ‘ㆆ’ 표기의 예입니다.
 

동국정운식 표기

① 초성에 사용

揖, 安 - 동국정운식 표기로서, 초성에서 ‘여린 히읗(ㆆ)’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② 이영보래(以影補來)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 표기는 16세기에 동국정운식 표기가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집니다.
 
❶ 개념
影으로써, 來를 보강한다. ⇒ ‘ㆆ’으로써 ‘ㄹ’을 보강한다.
예시) 戌 [술]  → [] , 彆 [별] → []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❷ 등장 이유
한자음의 종성에서 중국식 종성 발음 [ㄷ]은 파열음이라서 짧게 끝나는 입성이지만, 우리식으로 정착된 종성 발음 [ㄹ]은 유음이라서 길게 발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식 발음을 고려하면서도 중국식 발음에 가깝도록 하기 위해 만든 규정입니다.
 

※ 이영보래 외의 방법 (‘ㄷ’으로 교체)

신하들이 쓴 <훈민정음 해례>에서 한자음 표기에 ㄹ 받침을 쓰지 말고 ‘ㄷ’ 받침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시) 戌 [술] → [슏], 彆 [별] → [볃]
 
하지만 이 방법은 중국 한자음 발음을 잘 반영하지만, 우리 발음을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제외된 방법입니다.
 

&amp;amp;amp;amp;amp;amp;amp;amp;lt;훈민정음 언해본&amp;amp;amp;amp;amp;amp;amp;amp;gt; 세종의 어제 서문

2) 훈민정음 어제 서문

위 이미지는 ‘ㆆ’에 대한 <훈민정음 언해본> 세종의 어제 서문에서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분명히 음가가 있어 발음이 가능하므로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표현하지 못할 사람이
  •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해설
위 이미지의 윗쪽 붉은 네모 칸의 표기 - 관형사형 전성 어말어미인 ‘-ㄹ’ 뒤에 붙어서 겹받침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된소리 부호와 절음 부호로 사용되었습니다.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安 - 동국정운식으로 표기하면 []입니다. 초성에 사용하였습니다.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 당시의 우리식 한자 발음은 초성에서 'ㅇ'과 'ㆆ'을 구별하기 어려웠으므로 [안]으로 읽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amp;lt;훈민정음 언해본&amp;gt; '예의' 부분

3) 훈민정음 예의

위 이미지는 ‘ㆆ’에 대한 훈민정음의 예의와 언해를 한 부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ㆆ(여린 히읗)은 후음(목구멍소리) 글자이니, 그 소리는 한자 ‘挹’의 초성 발음과 같다.
  • ㄴ은 설음(혓소리) 글자이니, 그 소리는 한자 '那'의 초성 발음과 같다.
  • ㅂ은 순음(입술소리) 글자이니, 그 소리는 한자 '彆'의 초성 발음과 같으니, 나란히 쓰면 步(뽕)의 초성 발음과 같다.

 ▶ 해설

  • 挹 - 동국정운식 표기. ‘挹’의 발음은 세종께서 사람들에게 창제한 문자의 발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 사용한 한자의 발음입니다. 초성에 사용하였습니다.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 音 - 위의 언해한 부분에서는 발음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동국정운식으로 표기입니다. 초성에 사용하였습니다.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 那낭ㅎ 字ᄍᆞᆼ - 받침소리 없는 한자어나 고유어의 받침 ‘ㄹ’ 뒤에서 관형격 조사로 쓰인 것입니다.
  • 彆 字ᄍᆞᆼ - 이영보래한 글자입니다.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위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 步뽕ㅎ 字ᄍᆞᆼ - 받침소리 없는 한자어나 ‘ㄹ’ 받침의 고유어 뒤에서 관형격 조사로 쓰인 사잇소리입니다.
&amp;lt;월인석보&amp;gt;와 &amp;lt;훈민정음 언해본&amp;gt;에서

4) 월인석보

위 이미지의 위쪽은 ‘ㄹ’ 받침의 고유어 뒤에서 관형격 조사로 쓰인 ‘여린 히읗(ㆆ)’의 예시입니다.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 소리며 지옥의 소리며 못 듣는 데 없으십니다.’
 
▶ 해설
‘하ᄂᆞᆯ+ 소리’ 으로 분석되며 ‘하ᄂᆞᆯ’이 ‘소리’를 수식하기 위한 관형격 조사가 ‘ㆆ’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형격 촉음, 혹은 사잇소리라고 합니다. 15세기 세종 당시에 지은 일부 문헌에서만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위 이미지의 아래쪽은 ‘입시울+ㅅ 소리’로 분석되며, 15세기 세조 때 편찬한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관형격 촉음(사잇소리)가 ‘ㆆ’ 에서 ‘ㅅ’으로 통일되었네요.
 
※ 사잇소리는 합성어를 만들 때도 사용합니다.
 

3. ‘여린 히읗(ㆆ)’의 쓰임

초성과 종성에 쓰이는 자음 문자로 창제되었지만, 15세기 당시에도 우리말에서는 쓰임이 많지 않았습니다. 주로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1) 초성

고유어의 표기에서는 초성에 쓰이지 않으며,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서 초성에 사용되었습니다.
挹 [] , 音 [], 安 []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문헌에 기록된 여린 히읗' 부분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2) 이영보래(以影補來)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입니다.
戌 [], 彆 [], 月 []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문헌에 기록된 여린 히읗' 부분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3) 된소리 부호

관형사형 전성 어말어미인 ‘-ㄹ’과 함께 쓰입니다. ’ㄹ‘ 발음 뒤의 ’ㆆ‘은 빠르게 성문이 닫는 발음이므로, 그 영향으로 뒤에 오는 자음이 된소리로 발음됩니다.
배, ᄅᆞ미니라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문헌에 기록된 여린 히읗' 부분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4) 절음부호

관형사형 전성 어말어미인 ‘-ㄹ’과 함께 쓰입니다. ’ㆆ‘은 ’ㄹ‘이 길게 발음되지 않게 목구멍을 성문으로 막는 발음이므로, 뒤에 나오는 발음과 분명하게 끊어주는 역할을 하므로 ’절음 부호‘라고 합니다.
노미 하니라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문헌에 기록된 여린 히읗' 부분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5) 관형격 조사

종성 발음이 없는 한자어나 고유어의 체언 받침 ‘ㄹ’ 뒤에서 관형격 조사(관형격 촉음- 사잇소리)로 쓰입니다. 관형격 조사 ‘~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   ☞ 표기가 불가하니, 표기는 '문헌에 기록된 여린 히읗' 부분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那낭 字ᄍᆞᆼ, 步뽕 字ᄍᆞᆼ
 

&lt;훈민정음 해례본&gt;의 '합자해'와 '용자례'에서

4. ‘ㆆ’의 소멸

위 이미지의 윗쪽은 <훈민정음 해례>의 ‘합자해’에 나오는 내용으로 ㆆ과 ㅇ 발음이 서로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려우므로 같이 쓸 수 있다는 말로서, 고유어에서는 초성에서 ㆆ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위 이미지의 아랫쪽은 <훈민정음 해례>의 ‘용자례’에 나오는 내용으로, 목구멍 소리의 'ㅇ, ㅎ'의 사례는 나오지만 'ㆆ'의 사례는 나오지 않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도 'ㆆ'과 'ㅇ'  발음을 구별하지 않고 ‘ㅇ’으로 표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조 때까지 사용되다가 16세기 동국정운식 표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ㆀ(쌍이응)’, ‘ㆅ(쌍히읗)’과 함께 소멸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여린 히읗(ㆆ)’의 발음 방법과 과거 문헌에서 사용한 사례와 쓰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문자이지만, 우리 문자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서 세계의 다른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디지털 발음기호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 문자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